2015년, 첫 베이징 출장. 중국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횡단보도 교통 신호는 자동차나 보행자 모두 지키지 않았고, 지하철을 탈 때마다 짐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은 이상했지만, 먼저 다녀온 이들의 불평과 달리 음식은 매우 입에 잘 맞았고, 숙소도 쾌적했고 사람들도 친절했다.
거리는 번화했고 모두들 생기에 넘쳐 보였다. 디디다처라는 앱으로 택시를 잡았고 (우리나라에 카카오 택시가 등장 하기 전의 일이다) 어디서든 쯔푸바오 앱으로 결제를 했다. 돈을 더 내면 일반 택시 대신 벤츠나 아우디를 부를 수 있었고, 같은 식당에서도 좋은 자리로 안내받았다. 회의에서 리뷰받은 중국 경쟁사 비즈니스 모델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였어? 당신들 공산국가 아니었어?
어떻게 이토록 노골적인 시장경제가 자리잡았을까?
그로부터 2년간 매달 중국 출장이 있었다. 베이징의 풍경이 익숙해질수록 궁금한 것은 더 많아졌다. 공산혁명이 있은 지 백 년도 지나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에 어떻게 이토록 공공연하고 노골적인 자본주의가 들어왔을까? 중국 공민들이 이 변화 과정에 조금의 모순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베이징의 모습은 어디서 나온 것이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는다면 중국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 경제 성장과 변화를 다룬 책과 자료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자료들은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답을 주지 못했다. 난 이 답을 찾기 위해 중국 현대사의 시작점부터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시기, 즉 마오쩌둥의 책을 찾아보게 된 계기이다. 마오쩌둥에 대하여 가장 처음 읽은 책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중국의 붉은 별’이다.
중국의 붉은 별 - 베일 속에 가려졌던 중국 혁명가의 이야기
”나는 7년간 중국에 체류하면서 홍군과 소비에트 지구들, 그리고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되는 것을 보았다. 당파심이 강한 열성적 지지자들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미리 준비해 둔 답변들을 거침없이 쏟아놓을 수 있겠지만 그런 답변을 들어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그들은 홍구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 중국의 붉은 별 1장 중
중국의 붉은 별 은 마오쩌둥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책이며, 르포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책이다. 미국인 기자 애드거 스노가 마오쩌둥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출간한 책으로, 인터뷰한 시점은 1936년이다.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을 마치고 옌안에 근거지를 확보하였으며, 마오쩌둥이 당내 권력을 확보했던 시점이다. 마오쩌둥의 일생을 혁명 지도자의 시절과 해방 이후 중국 최대 권력자의 시절로 나눈다면 이 책은 앞부분의 시절까지 만을 다루고 있다.
당시 마오쩌둥은 서방은 물론 중국 내부에서조차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기에 이 책은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책에 묘사된 혁명 지도자 마오쩌둥의 모습은 그를 매력적으로 세상에 알리게 하는데 도움을 줬다. 마르크스주의에 우호적이었던 애드거 스노, 그리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중국 공산당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나온 책으로도 볼 수 있다. 당시의 평가나 르포문학의 가치와는 별개로 역사서로서는 이 책을 비판적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중국의 이 홍군은 자각적인 마르크스주의 혁명가 집단인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그 강령은 어떤 내용인가? (중략) 농민, 노동자, 학생, 군인 수천 명이 난징 정부의 군사독재에 무력항쟁을 벌이고 있던 홍군에 가담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 (중략) 그들은 세계 다른 지역의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과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떤 면에서 다른가? (중략) '그저 모스크바의 앞잡이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주로 중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민족주의자들인가?... 대장정을 이겨내게 했던, 그들의 희망과 목표와 꿈은 어떤 것이었나? (중략) 이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고, 무엇을 먹고살며, 어떤 놀이를 즐기고,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노동하는가? (중략) 중국 공산주의 운동의 군사적, 정치적 전망은 어떠한가? (중략) 끝으로, 중국에 '민족통일전선'을 만들고 내전을 중지하자는 공산당의 제의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가? … - 중국의 붉은 별 1장 중
이 책이 아직도 가지는 가치
중국 혁명과 마오쩌둥을 다룬 책들이 거의 없던 시절과 달리, 최근에는 보다 객관적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된 역사서가 많이 나온 상황에서 이 책을 굳이 찾아 읽으라고 선뜻 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당시 홍구의 생생한 풍경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여전히 매력이 있다. 마오쩌둥이나 공산당 주요 인물에 대한 인터뷰뿐 아니라, 홍구에서 만난 농민과 병사의 이야기, 그곳에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당시 혁명가 마오쩌둥이 바라던 세상-최소한 다른 이들이 그렇게 알아주길 바라는 생각-에 대하여 들을 수 있다. 이는 후에 그가 잔혹한 권력자가 되어 벌인 대약진운동이나 문화혁명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마오쩌둥 평전이나 중국 근현대사를 다룬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함께 읽다 보면 마오쩌둥이라는 인물과 당시의 시대상을 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른 대안이 많은 오늘날에도 이 책이 여전히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 되는 이유다.
중국의 붉은 별
<세계를 뒤흔든 열흘>, <카탈루니아 찬가>와 더불어 세계 3대 르포 문학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중국 혁명에 대한 아주 잘 잘 알려진 역사적 고전일 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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