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재택근무가 이어지다 보니 서재는 업무공간이 되었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책장과도 마주 앉게 되는 시간이 늘었다.
책장에 꽂힌 책을 다 보진 못했다. 몇 페이지 아니면 절반쯤 읽다 접어 둔 책이 더 많을 것 같다. 읽은 책이라도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저 책을 언제, 어떤 이유로 골랐는지는 생생히 기억한다. 때로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때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나를 지키기 위하여 책을 찾았다. 누군가의 추천을 받거나 우연히 마음에 맞는 책을 찾은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앞서 읽은 책이 다음 책으로 안내해줬다.
혹자는 책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책은 당신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당신이 답을 찾아 헤멜 때, 세상의 부조리에 상처 받았을 때 책은 물론 그 무엇도 당신에게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길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답을 찾기 위해 책과 책 사이를 헤매는 그 여정 위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 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 강유원, 책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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